나의 발자취/남부권

[스크랩] 부산장산 마고당

마고영 2011. 9. 17. 20:14

 

 

 

 

 

 

 

좌동 천제당과 상산마고당

제당의 소재지 : 좌동의 폭포사에서 위쪽으로 600m쯤 올라가 너덜겅 가에 위치해 있다.

 

제당의 건립 연대 : 1924년(中元甲子七月初六日未時上樑)이다.

 

제당과 신격 상징물 : 

상산마고당의 건평은 1.2평(앞면 201cm, 옆면 199cm)이며 좌향은 동남향이다. 

기와 맞배지붕에 용마루 양쪽에 중 오른쪽에 치두, 왼쪽에 치미로 장식되어 있으며,

벽은 붉은 벽돌을 쌓은 벽이고, 문은 여닫이 두 짝 나무문이다. 

제당 앞 현판(가로 64cm, 세로 16cm, 두께 1.5cm)에는

 ‘上山麻姑堂(中元甲子七月初六日未時上樑)’이라 쓰여 있다. 

제단은 ⌐형 화강석 제단(앞면 133cm, 옆면 55cm, 높이는 68cm, 두께 12cm)이며,

위패(세로 29cm, 가로 8.2cm, 두께 1.7cm)는 너무 오래되어 글씨가 잘 보이지 않으나,

‘장산麻姑靈神神位’이라 쓰여 있다. 

그리고 제단 위에는 촛대 2개, 정화수 2그릇, 쌀 1그릇, 향로 1개,

삼색 과일을 담은 그릇 1개가 얹혀 있다.

 

제당 주위 환경 :

마고당은 높이 180cm의 돌담이 사방으로 둘러 있고,

제당 아래쪽에 1.5평(앞면221cm, 옆면 230cm)의 서북향의 부속 건물이 있으며,

무속인들이 사용하는 산신제단(앞면 50cm, 옆면 57cm,

두께 8cm의 돌이 지상에 48cm 위에 얹혀 있는 것)이 제당 입구 오른쪽에 있다. 

그리고 돌담 밖 오른 쪽에는 잡목, 왼쪽과 뒤쪽에는 너덜겅이다. 

천제당의 주위에는 소나무가 무성히 서 있다.

 

제관 선정 :

제의를 주관하는 마을(6개 마을이 윤번제로 함)에서 제관 1명을 제의 10일 전에 

생기복덕이 있는 자를 선정하며, 제물 운반자 1명은 제관이 지명한다.

 

제의 날짜와 연회수 :

1월 3일과 6월 3일 자정이며, 연 2회이다.

 

제물과 제의 절차 :

천제당의 제물은 삼색 과일, 조리하지 않은 생선, 생쇠머리, 제반, 술이며,

마고당의 제물은 천제당에서 사용한 쇠머리를 부속건물에서 삶아 얹고

나머지 제물은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같다. 

제물의 진설과 제의 절차는 제관의 뜻에 따라 행하되, 일반 기제사와 같다.

 

제의 전과정 :

천제당제→마고당제→거릿대제의 순서이다.

 

음복 여부 :

주최하는 마을의 노인들이 해반한다.

 

금기 기간 :

제물을 조리하는 날부터 정월 말까지다.

 

제의 경비 :

제의를 주최하는 마을의 노인정에서 부담하는데 60여만원 든다.

 

제관에 대한 보수 :

없다. 단 요사이는 폭포사에서 제의를 대행하기 때문에 폭포사 주지에게 돈을 건내되,

좌동신당보존위원회에서 낸다.

 

특기사항 :

 

 1. 『동래부동하면고문서』의 ‘장산神堂重建慕椽文’에 의하면,

예로부터 이 신당이 있었는데,

1924년에 上三洞(좌동,중동,우동의 6개 마을 = 운촌,중동,미포,장지,오산,좌동)이

중건하였다고 기술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당국에서 소의 밀도살을 금했으나,

이 마고당제의 제물에는 쇠머리를 제수로 반드시 올렸기 때문에

마고당제 때 소 잡는 것을 당국에서 허용하였다고 한다.

 

2.   정월 3일 제의는 전염병 예방과 해운대 6개 마을의 안녕을 목적으로,

유월 3일 제의는 삼재(풍해, 충해, 병해)가 없는 기풍을 목적으로 한 제의인 것이다.

 

3.   한 해에는 운촌 마을이 주관하여 마고당제를 지내는데

쇠머리 대신에 돼지머리를 사용했다가 제관에게 액운이 닥쳐와

다시 당산제를 지냈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4.   광복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어느 해의 유월에 노인들의 모임인 갑계에서

송아지를 잡고 제물을 장만하여 장산 신당에 가서 제를 올리는데,

너무 더워서 마고당제를 지내는 사람들이 두루마기를 벗어

신당 옆 바위 위에 얹어놓았는데

갑자기 두루마기 하나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양운폭포 아래의 가마소에

떨어져 있으므로 사람들이 몰려가서 긴 지갱이 두 개로 휘저어 보았으나

물 속으로 가라 앉아 끝내 두루마기를 찾지 못하였다. 

그런데 두루마기의 임자는 자기 아내가 임신했는데도 불구하고

마고당제에 참석하여 그런 변을 당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고 한다.

 

5.   장山堂山記  *장(보리수장자가 안 나옮)

 

如是我聞 撫州南城懸 有麻姑壇 有禱輒應人 咸神之吾州 古稱蓬萊 東距十五里許

여시아문 무주남성현 유마고단 유도첩응인 함신지오주 고칭봉래 동거십오리허

 

有장山 自雲峰嶺乃曳而長演이徐行屹立乎海上處地最高中阜下距內寬外密天然作一區

유장산 자운봉령내예이장연이서행흘립호해상처지최고중부하거내관외밀천연작일구

 

雖當晴晝白雲분入則咫尺不可瓣眩忽變化又廓然莫知基所如危石削

수당청주백운분입칙지척불가판현홀변화우곽연막지기소여위석삭

 

入蘇封蔓絡佳木異草上偃旁綴連峰有無遠近環合彩翠雲濤昏朝萬壯眞仙人可居地之也

입소봉만락가목이초상언방철연봉유무원근환합채취운도혼조만장진선인가거지지야

 

下有左中右三里古昔年代里人於山之乾淨地頭構一座神祠顔之曰麻姑堂

하유좌중우삼리고석년대리인어산지건정지두구일좌신사안지왈마고당

 

水旱려疫禱焉歲時奉祠如法蓋未知命名之義也神仙傳云麻姑自言見東海

수한려역도언세시봉사여법개미지명명지의야신선전운마고자언견동해

 

三爲桑田向聞蓬萊水乃淺於住者豈將復爲陸陵乎當按行蓬萊如是便還云抑亦

삼위상전향문봉래수내천어주자기장복위육능호당안행봉래여시편환운억역

 

取蓬萊按行之義而名之歟噫桑田海水今尙許況數椽屋子安能久而不朽也哉

취봉래안행지의이명지여희상전해수금상허황수연옥자안능구이불후야재

 

歲甲子春自三里中人各想起香火之緣鳩材董工仍舊址而新建齊盧不爲侈儉不

세갑자춘자삼리중인각상기향화지연구재동공잉구지이신건제로불위치검불

 

至陋尸議重建者曰某某終始監董者曰某某徵文于不妄者曰宋章浩也不妄有一

지루시의중건자왈모모종시감동자왈모모징문우불망자왈송장호야불망유일

 

言相贈昔王方平蔡經親見麻姑是好好年可一八九許頂中作餘垂之至腰基衣有

언상증석왕방평재경친견마고시호호년가일팔구허정중작여수지지요기의유

 

文章而非錦繡光彩曜日世聞所無有也使君之里人相與齊心薦誠滄花絶粒而將事焉

문장이비금수광채요일세문소무유야사군지리인상여제심천성창화절입이장사언

 

則亦惑欣然庶幾遇之地夫              甲子秋七月旣望後九日  叙

칙역혹흔연서기우지지부              갑자추칠월기망후구일  서

 

                    成均館博士 南平 文聲駿   謹識

                    성균관박사 남평 문성준   근식


6.   장산神堂重建慕椽文

 

장산本郡內鋸大名山也自數百年前山下左右中三洞創建神堂于靜寂處每年正六兩月

장산본군내거대명산야자수백년전산하좌우중삼동창건신당우정적처매년정육양월

 

洞致誠行祭凡百有求必禱於比堂壽我福我驅厲鬼而遠之五穀豊熟神

동치성행제범백유구필도어비당수아복아구려귀이원지오곡풍숙신

 

眞靈也矣治乎今日該堂年久毁傷上雨傍風三洞同意必重建乃已而所乏者金錢也

진영야의치호금일해당년구훼상상우방풍삼동동의필중건내이이소핍자금전야

 

玆將草胡之文幸檀越之施伏乞   僉君子不惜一銖之塊以成十匙之飯庶斯堂

자장초호지문행단월지시복걸   첨군자불석일수지괴이성십시지반서사당

 

永傳不朽其於求福事神之道千萬幸甚焉            中元甲子六年  日

영전불후기어구복사신지도천만행심언            중원갑자육년  일

 

 [鄭景柱編譯   東下面古文書     海雲臺區   1994, 232-235면]


7. 「천제당』과 「마고당』의 입간판에 기록한 글은 아래와 같다.

 

「천제당(天祭堂)』

 

이곳은 마고당 할머니께 제사를 올리기 전에 하늘과 사신께 먼저 제를 올리는 신성한 곳이며,

옛날 옛적부터 연면히 이어오고 있는 민속 전통의 자리입니다. 

이 근처에서 가무, 취사, 촛불 점화 등 일체의 무속행위 및 자연훼손 행위를 금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기 2000년 3월  일

해운대구청장  해운대경찰서장  장산신당보존위원회장

 

 

「마고당(麻姑堂)』

 

아득한 1900여년 전 신라 탈해왕 23년경 이 일대를 장산국이라 하여

거병 30명의 부족국가가 형성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조선조 중엽부터 봉산으로 지정되어 나라에서 육림벌채하였으며,

서기 1714년 이래 동하면민이 기우제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마고할머니를 모신 제당을 세워 유월에 제를 모시고

질병예방과 풍농어를 기원하였다는 기록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제 제 24호인 『동하면고문서』

(좌동경로당 보관 중 1992년 부산시립박물관에 기탁한 총 36책)

가운데 “東下大洞節장산神堂重建募椽文”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300년 가까이 좌동,우동,중동 등의 여섯 마을에서 윤번제로 제를 모셔오던 중

근년에 와서 음력 정월에 제를 올리고 그 연원을 이어오고 있는 신성한 제당입니다. 

신당 경내에서는 무속,가무,촛불,취사 등

일체의 사행위 및 자연훼손 행위를 금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기 2000년 4월  5일

장산신당보존위원회  해운대구청장  해운대경찰서장

출처 : 마고삼신당
글쓴이 : 마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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